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지코 F. 후지오 (문단 편집) == 여담 == * [[2014년]]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가 랭킹에서 4718표를 얻으며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데즈카 오사무]](10751표), 3위는 [[토리야마 아키라]](3704표), 4위는 [[오다 에이이치로]](2212표), 5위는 친구인 [[후지코 후지오 A]].] [[https://ranking.goo.ne.jp/ranking/40423/|출처]] * 생전 애용하던 [[연필]]은 [[미쓰비시 연필|미쓰비시]] 유니의 B 사이즈로, 펜촉은 지브라의 카브라 펜을 주로 활용하였다. * 지금의 도라에몽이 크게 히트를 치고 장수 애니메이션으로 전세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순탄하게 진행되었던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도라에몽 탄생비화 단편만화에 실린 내용을 본다면 처음에는 아이디어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그와중에 어린 딸들이 잠들어있을때 어떻게 해야 할까...하면서 크게 고민을 하고 본인이 우연히 꾸던 꿈에서 나온 내용들을 하나하나 치밀하게 짜맞추고 노력한 끝에 도라에몽의 연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6권에서 끝내려고 하던 만화가 대장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슬하에 3녀를 두었으며, 그들에 의하면 평균 수면 시간을 4시간으로 맞추었던 일상 속에서도 시간이 날 때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 [[딸바보]]였다고 한다. * 태중이던 차녀의 순산을 생전에 못 볼 것을 직감했는지 아내 마사코 여사에게 금일봉을 맡겼다고 하며, 마사코 여사는 딸의 순산 후 금일봉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 도라에몽의 도구 내용을 이것저것 뜯어본다면 작가의 노력과 재능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현대 기준으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의 미래과학의 모든 것들을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상상하면서 만화로 그려낸 셈이다. * 좋아했던 여[[배우]]는 시라카와 유미. 토키와 장에 머무르던 시절 A에게 담배가게 앞에 시라카와 유미가 있어!라고 전해듣고는 황급히 방을 뛰쳐나가 담배 가게까지 달려나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어서 가게의 [[할머니]]에게 시라카와 유미 씨가 여기에 없었습니까?라고 묻자 할머니는 [[창문]]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그 포스터 안에 시라카와 유미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 초대 전속 [[비서]]는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을 그린 에비하라 타케시가 맡았으며, 무기와라 신타로(하기와라 신이치로)도 어시스턴트로 그를 지원해주면서 함께 연극을 보거나 소바([[메밀국수]])를 같이 먹는 등 무척 친밀한 관계로 지냈다. 더욱이 후지코 F. 후지오는 무기와라가 그린 만화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지도해주면서 도라에몽 단행본의 표지를 맡기는 등 자신의 미래를 대비한 후진으로도 준비시키고 있었다. * [[어린이]]가 말한 여러 질문들에 대해선 최대한 [[동심파괴]]스럽지 않게 말했다. 아래는 사례들. * [[타케다 테츠야]][* 혐한 + 일본 내 지역 감정 조장 등으로 성격에 있어서 평판이 지독히 나쁜 사람이나 그런 타케다 테츠야가 후지코 F. 후지오를 평생 존경하기로 했다는 것은 작가가 정말 엄청난 인품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다.]가 어린 [[딸]]을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갔을 때 딸이 도라에몽은 어디 있냐고 묻자 바로 도라에몽은 지금 [[방송국]]에 있는 거다고 말했다. 타케다 테츠야는 이때 매우 감동해서 후지코 F. 후지오를 평생 존경하기로 했다고. * 도라에몽의 인기가 높았던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4차원 주머니]]를 가지고 있지 않냐고 묻자 도라에몽이 착용하고 있지만 그 외에 예비 주머니가 있는데, 이 2개밖에 없기 때문에 나한테 없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 도쿄로 올라왔을 당시에 사망률 1위를 기록했던 [[결핵]]에 걸린 적이 있었지만 얼마 안 가 기력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 사실상 그의 첫번째 작인 [[노비타의 공룡]]이 개봉하기 전날에 관객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영화관 건너편에 있는 한 [[호텔]]로 숙소를 잡았으나 영화를 보러 많은 아이들이 달려와서 감상한 것을 보고 안심했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인스턴트]] 컵라멘[* 특히 [[치킨라멘]]을 가장 좋아했었다고 한다.]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코이케 씨]]의 모델이자 동료인 스즈키 신이치는 자신보다 매우 라멘을 좋아했다고 말했으며, 후지코 F. 후지오는 생전 컵라멘을 [[물]]을 뿌리는 것만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마술]]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본인의 여러 작품에서도 라멘을 종종 그려냈는데, 대개 [[나루토마키]]가 고명으로 그려진 모습으로 나왔었다. 스튜디오 제로의 [[사장]]을 지냈을 때는 당시 스튜디오의 전무가 혼자서 사장 전용 차량으로 중고 [[링컨 컨티넨탈]]을 구입했고 개인 운전사도 고용했었는데, 오다큐 선 [[열차]]를 타는 것에 익숙하던 그가 이를 꺼려 전용 차량은 일년에 몇번만 가동하는데 그쳤다고 한다. * 그의 작품 대부분이 한국에 방영이 되어서인지 국내에서도 익숙한 인물이자 유명하다. 그의 작품중에서 첫번째로 한국에 방영이 된 것이 [[도라에몽]]이며 그 후에도 여러 애니 채널에서 [[우주에서 온 모자코]], [[퍼맨]], [[키테레츠 대백과]] 등 여러 가지가 방영됐다. 만약 2010년대까지 살아있었다면 감사의 의미로 방한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매우 아쉽다. * [[타케다 테츠야]]의 [[노래]]를 좋아하여 [[극장판]]의 엔딩 테마를 계속 담당하던 그를 강판하자고 제의가 들어왔을 때 완강히 거부한 것이 도라에몽 대전집에서의 증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타케다 테츠야가 작사한 노래 가사를 자신의 만화에 연출로 삽입하기도 했다. 후지코 F. 후지오가 점찍어 오랜 기간 도라에몽 극장판의 주제가를 작곡했던 타케다 테츠야는 1996년 개봉한 [[노비타와 은하초특급]]을 마지막으로 물러났다. 후지코 F. 후지오가 이 작품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 생전에 [[데즈카 오사무]]라는 일본 만화계의 대선배이자 거장을 존경했었다. 데즈카 오사무는 후지코 F. 후지오의 만화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54년 [[데즈카 오사무]]가 입주한 이래로 여러 만화가들이 거주하며 많은 만화가들을 양성한 [[토키와 장]]에 후지코 후지오 A와 함께 입주한 이래로 데즈카 오사무와 안면을 트게 되었고, 제자 격의 관계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 롯데 조지훈 응원단장 10주년을 맞은 몰래카메라로 2016년 4월 2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KBO 리그]] 롯데와 KIA 경기에 시구자로 표시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Wz_KdRDLF8|영상]] 도라에몽데이를 맞아 식전행사 사회를 본 조지훈 단장이 시구자로 도라에몽의 원작자 후지코 F. 후지오를 소개했지만 전광판에 나온 시구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 그의 숨겨진 명작인 '''UTOPIA 최후의 세계대전'''이 언급되었다. 국내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었기에 화제가 잠깐 되기도 했다. * [[베트남]]에서 도라에몽을 출판했을때 베트남에서 출판되는 책의 인세를 받지 않고 대신에 그 돈으로 베트남 아이들을 위한 현지 장학금 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 [[2066년]]에 모든 작품의 [[저작권]]이 풀릴 예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